굿즈 기획자로 일하면서 매년 소비자 행동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데,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팬들이 예전처럼 “전부 다 모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의미 있는 것만” 고르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이 바뀌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이 현상을 ‘컬렉팅(Collecting)에서 큐레이팅(Curating)으로의 전환’ 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트렌드가 무엇인지, 왜 지금 나타나고 있는지, 그리고 굿즈 제작·유통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컬렉팅과 큐레이팅, 무엇이 다른가
두 소비 방식의 차이를 간단한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컬렉팅(Collecting) | 큐레이팅(Curating) |
|---|---|---|
| 목표 | 완전한 세트 완성 | 취향에 맞는 선택적 수집 |
| 구매 동기 | ”없으면 안 된다" | "이것이어야 한다” |
| 보관 방식 | 전시 위주, 많을수록 만족 | 소수의 좋은 것을 공들여 배치 |
| SNS 표현 | 수집량, 완성도 자랑 | 개인 취향과 스토리 공유 |
| 가격 민감도 | 중간 (세트 완성이 우선) | 낮음 (원하는 것에 기꺼이 지불) |
컬렉팅이 “얼마나 많이”에 집중한다면, 큐레이팅은 “얼마나 나답게”에 집중합니다. 물론 두 방식은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이 한 IP에서는 컬렉팅을, 다른 IP에서는 큐레이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비중이 큐레이팅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흐름입니다.
왜 지금 큐레이팅 트렌드가 부상하는가
굿즈 물가 상승의 현실
2023년 이후 원자재값, 물류비, 인건비 상승이 겹치면서 굿즈 단가가 전반적으로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3,0005,000원이면 살 수 있었던 아크릴 키링이 이제는 7,00012,000원을 넘기는 경우가 흔합니다. 포토카드 세트, 피규어, 콜라보 아이템까지 합치면 한 달 굿즈 지출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선택을 고민하게 됩니다. “다 살 수 없다면, 무엇을 살까?”라는 질문이 큐레이팅 소비의 출발점입니다.
공간의 한계와 미니멀리즘의 영향
1~2인 가구가 늘어나고, 작은 공간에서 삶의 질을 높이려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흐름이 확산되면서 굿즈 보관 공간에도 한계가 생겼습니다. 한때 선반 가득 채우는 것이 자랑이었다면, 이제는 “이 선반에 10개밖에 없지만 하나하나 다 이유가 있어”라는 방식이 더 쿨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입니다.
Z세대~알파세대의 가치 소비 성향
MZ세대(밀레니얼·Z세대)보다 더 아래 세대로 내려올수록, 물건 자체보다 “내가 이것을 왜 갖고 있는가”에 더 민감합니다. 이 세대에게 굿즈는 소유물이기 이전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의미 없는 수집보다 공들인 선택 한 가지가 SNS에서도 더 설득력 있게 보입니다.
큐레이팅 소비자가 선택하는 굿즈의 특징
저희가 관찰한 바로는, 큐레이팅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굿즈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1. 개인화 요소가 있는 굿즈 이름, 날짜, 메시지를 넣을 수 있거나, 소량 한정이어서 “나만 가질 수 있는” 느낌이 강한 제품에 더 끌립니다. 아티스트와의 연결감, 혹은 특정 이벤트와의 기억이 결부된 아이템도 여기에 속합니다.
2. 실용성과 수집 가치의 결합 “쓸 수도 있고 장식할 수도 있는” 물건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습니다. 단순 장식품보다 고급 문구류, 캐릭터 텀블러, 디자인 필통 등 일상에서 사용 가능한 굿즈가 큐레이팅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3. 스토리가 있는 굿즈 제작 배경, 작가의 의도, 사용된 소재의 의미 등 “이야기”가 담긴 굿즈는 단순 대량생산품보다 선택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패키지에 아티스트 노트가 동봉되거나, 굿즈가 만들어진 과정을 SNS로 공개하는 브랜드가 큐레이팅 소비자에게 더 어필합니다.
4. 적당한 희소성 무한정 생산되는 물건보다 “소량 제작, 재판 없음”이라는 조건이 붙은 굿즈가 큐레이팅 소비자에게 의미를 줍니다. 단, 인위적 희소성이라는 것이 느껴지면 오히려 반감을 삽니다. 진짜 한정의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굿즈 제작자·브랜드 입장에서의 시사점
이 트렌드가 굿즈를 기획하고 유통하는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SKU(Stock Keeping Unit, 품목 수) 최적화
예전에는 “많은 캐릭터를 다양한 소재로 넓게 만드는” 전략이 유효했습니다. 큐레이팅 트렌드 아래에서는 상품 종류보다 각 상품의 완성도와 스토리가 중요해집니다. SKU를 줄이더라도 하나하나 더 공들인 제품이 오히려 더 높은 단가와 만족도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제품 소개 콘텐츠의 강화
구매 결정에 “왜 이것인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해졌습니다. 상품 상세 페이지, SNS 피드, 스토어 블로그에서 굿즈가 탄생한 배경, 사용된 소재의 의미, 이 굿즈가 어떤 순간에 어울리는지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구매 전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리미티드(Limited) 전략의 재정의
“한정”이라는 단어가 남발되어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진 상황입니다. 이제는 한정의 이유가 설득력 있어야 합니다. “작가 직접 제작으로 월 50개만 가능”, “특정 이벤트 현장 한정”처럼 명확한 이유가 있는 한정성이 큐레이팅 소비자에게 통합니다.
큐레이팅 트렌드가 IP 비즈니스 전체에 미치는 영향
이 흐름은 굿즈 소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선택적으로 깊게 빠져드는 IP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IP 브랜드 입장에서는 팬 한 명 한 명과의 관계 밀도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넓게 퍼뜨리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깊게 좋아하게 만드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유리합니다.
헤세드코퍼레이션에서도 이 변화를 반영해, 단순 수량 대비 소비자 반응의 질(구매 후기의 깊이, 재구매율, SNS 자발 공유 비율)을 더 주요한 굿즈 기획 지표로 삼고 있습니다. 판매량 숫자 하나보다 “이 굿즈가 구매자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됩니다.
마무리 - 많이보다 깊게, 굿즈 시장도 바뀌고 있습니다
컬렉팅에서 큐레이팅으로의 전환은 굿즈 시장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소비자가 단순히 아이템을 쌓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의미 있는 컬렉션을 구성하려 한다는 것은, 굿즈가 단순 소비재를 넘어 문화적 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굿즈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 변화는 도전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진심을 담아 공들인 굿즈 하나가 열 개의 평범한 굿즈보다 더 오래, 더 진하게 기억됩니다. 그것이 큐레이팅 시대의 굿즈 기획자가 가져야 할 기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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